수학자 비에트 (Francois Viete)

1. 생애

  • 1540년 프랑스의 퐁테네(Fontenay) 르콩트에서 태어났으며 수도원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음.
  • 아버지는 변호사였고 어머니는 국회의장의 고모였음.
  • 18세에 프와띠에(Poitiers) 대학에서 법학 공부, 19세에 법학사 학위 취득, 변호사 자격증 취득.
  • 당시 구교 카톨릭 신자들과 신교도인 위그노들의 대립이 심하였음. 비에트는 카톨릭 신자였지만 한때 신교도의 집안에 고용되었다는 이유로 ‘국회 변호사’ 일은 하지 못함.
  • 브리타뉴 지방으로 옮겨 ‘국회 변호사’ 일을 하였으며, 발로아(Valois) 집안 출신의 마지막 프랑스 왕이었던 앙리 2세의 휘하에서 궁정의 개인고문으로 활약. 그곳에서 대수학 이론을 발전시킴.
  • 1574년 샤롤 9세(당시 왕)가 사망하고 앙리 3세가 권좌를 물려받았으며 6년 뒤 비에트는 왕의 고문이 됨.
  • 앙리 3세가 살해당하고 앙리 4세가 왕이 됨. 앙리 4세는 비에트를 고용하여 구교도들의 음모가 작성된 암호문을 해독하게 함.
  • 앙리 4세가 낭트칙령을 발표하고 개신교에도 가톨릭과 동등한 권리 부여. 비에트는 이때 많은 공직을 맡았으며 1603년 파리에서 숨을 거둘 때까지 대수학과 관련된 업적을 다수 세움.

2. 업적

  • 최초로 체계적인 대수기호법 소개 : 비에트는 소수, 덧셈, 뺄셈, 분수 표시를 위한 기호들을 도입하여 대중화시켰다. 또한 영어의 알파벳을 방정식에서 미지수의 계수와 상수로 표현하였다. 비에트는 기지량을 자음으로 나타냈으며 미지량을 모음으로 나타냈다.
  • 대수학을 수학의 기초로 확립 : 카르다노는 ‘대수학의 공식을 기하학에서 증명한다’고 생각했으나 비에트는 이것을 바꾸어 ‘기하학의 작도를 대수학을 이용하여 정당화한다’로 전환하였다.
  • 삼각함수와 관련된 여러 가지 공식 : 삼각함수의 덧셈정리 등 여러 가지 공식을 만들어냈다.
  • 작도가능성 증명 : 사차방정식, 삼차방정식, 이차방정식, 일차방정식으로 나타나는 도형은 컴퍼스와 눈금 있는 자로 작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.

3. 논문 및 저서

  • 수학 요람 : 삼각함수에 관한 내용을 싣고 있다. 일 때 의 값을 에 관한 식으로 나타내었다.
  • 해석학 서설 : 기호를 이용하여 대수의 내용을 전개한 책이다.
  • 방정식의 수학적 해법 : 방정식의 근을 연속적으로 근사시키는 체계적인 과정을 소개하였다.
  • 방정식의 재검토와 수정 : 방정식론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. 비에트가 사망한 후 1651년 출간되었다.